제약사와 약가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건보공단의 보헙급여 약가 관리가 매우 허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사용량 연동 협상이 진행된 5개 약제의 경우 단 한 개 약제도 참고 가격에 준하는 수준으로 약가를 인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약은 최근 "총체적 부실, 공단의 약가 협상력을 평가한다"란 보도자료를 통해 “건보공단과 제약사간 협상에 문제가 있다”면서 “약가협상을 하는데 있어서 공단은 근거와 원칙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협상과정서 대체약제들의 선정, 투약 비용 편차, 협상약의 투약 비용 계산 등 수많은 변수들이 곳곳에 숨어있어 이들 변수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수십, 수백 배의 약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게 그 배경이다.

약가협상의 주체는 보험자를 대표하는 건보공단과 제약사다.

양측간 협상된 약가에 따라 건보공단은 국민의 보험료로 이루어진 건강보험재정에서 약제비를 지출하게 되며 환자들도 이 약가에 따라 병원과 약국에 약값(본인부담금)을 지불한다.

건약은 약제비적정화방안에 따른 약가 협상이 시행된 지 만 4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약제비 증가는 계속 급증(11조 초과)하고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않았다“면서 그동안의 약가협상 실례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부광약품의 "로나센"은 2009년 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로나센이 현재 한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대체약제들보다 효과나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별다른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로나센은 대부분의 대체약제들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을 받았다”고 사례를 제시했다.

이미 저가의 기존 치료제들이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효과가 별반 뛰어나지도 않은 약에 비싼 값을 매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약 17개 성분의 정신분열증 치료제가 시판되고 있다.

로나센의 대체약제들 중 1일 투약비용이 최소 50원에 불과한 것도 있다. 로나센의 1일 투약비용은 무려 25배가 넘는 2,550원이다.

로나센은 17개 대체약제들과 비교해서 효과나 안전성에 별반 유의미한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 가격에 있어서 5위권 내에 꼽힌다는게 건약측의 주장이다.

특히, 정신분열증 치료제 처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리스페리돈 제제와 비교해 보았을 때도 그 비용이 2배에 육박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고가약 위주 처방 패턴을 고려할 때 로나센의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불필요한 부담을 늘리게 될 것이라는 게 건약측의 전망이다.

또 하지 정형외과 수술 환자의 정맥 혈전색전증 예방약 바이엘코리아의 "자렐토"의 경우 혈전 예방약 범주에서 볼 때 일반 혈전 예방약들의 1일 투약비용(최소 16원에서 최대 2190원)에 비해 자렐토는 6,000원이 넘는 최고 약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바이엘에서 자렐토의 비교 대상으로 삼은 "에녹사파린"과 비교해도 자렐토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은 편.

에녹사파린을 고위험군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총 치료비용은 5만9,534원이지만 고관절 수술 환자에게 자렐토를 투여 시 총 치료비용은 20만원을 훌쩍 넘겨 비교 약제 가격보다 3배 이상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건약측은 또한 "ADHD 치료제로 유명한 한국릴리의 "스트라테라"는 2006년 6월 국내 시판허가 후 비급여로 판매되다가 2009년 9월부터 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면서 "ADHD 치료제로 그동안 널리 쓰였던 "메칠페니데이트"의 경우 1일 투약비용이 1,100원 정도인데 "스트라테라"의 경우 2배를 훌쩍 넘겨2,650원에 결정됐다"며 공단의 약가관리 부실을 꼬집었다.

이밖에도 2008년 5월 에이즈치료제 "프레지스타"에 대한 약가협상 합의서에 건보공단과 해당 제약사 한국얀센이 도장을 찍고 당시 얀센측은 "보험급여 대상으로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이후 무상공급 형태를 유지하며 정상적 약 출시를 거부해 오며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버렸다.

당시 협상에서 약속했던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건보공단은 돌연 지난 9월 16일 "프레지스타 "약가를 41% 인상하기로 하는 합의에 이르렀다.

협상이 끝난 약의 출시를 거부하고 부속합의서 약속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얀센의 행태에 대해 어떤 제제 조치도 없이 건보공단은 그저 약값을 대폭 인상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이어 건약은 사용량 약가 연동 따른 약가 협상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신약이 판매된 후 최초로 예상했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사용되는 경우 1회에 한해 약가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사용량이 예상량보다 수백, 수천 배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규정상 약가 인하는 10% 내에서만 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10% 내에서도 제대로 된 약가 인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건약측의 지적이다.

얀센의 "다코젠 주"의 경우 사용량이 580% 넘게 증가했지만 약가는 단 6.5% 떨어졌을 뿐이라며 사용량 연동 협상에 따른 참고 가격 산식에 따라 계산해 보면 최소 8% 이상 약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건약측의 분석이다.

한미의 "에소메졸캡슐 2mg"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용량은 약 400% 증가했지만 약가는 단 5원(0.5%)떨어졌다. 참고 가격 산식에 의하면 최소 7% 이상 약가를 떨어뜨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종근당의 "프리그렐"의 경우 사용량이 약 170% 증가했으나 약가 인하는 전혀 되지 않았다며 현재 건보공단의 약가협상력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건약측은 “로나센, 자렐토, 스트라테라에서 보듯 신약에게 대체약제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주는 현재의 협상 행태가 지속된다면 향후 약제비 증가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며 “건보공단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보험자 입장에서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건보공단 내부 감사와 관련 “현재까지 진행된 약가 협상에 대해 철저한 감사를 진행하되, 단지 일부 책임자들의 징계로 끝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건보공단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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