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져야 제 맛이다. 룸살롱에 앉아 막걸리 마셔봐도 그렇고, 주막집에 걸터앉아 양주를 마셔봐도 제대로 된 맛은 아니다.

룸살롱에서는 야리야리한 아가씨들의 시중 받으며 폭탄주 몇 잔 땡기는 운치가 있고, 주막집에는 앞치마 두른 아지매 젖무덤 쳐다보면서 시 한 수에 막걸리 한 순배 하는 것이 제 격일 것이다.

가끔 막걸리 생각나면 인사동을 들린다. 만나는 사람들이 걸작이고 한잔 술을 마시면서도 나름대로 술의 운치를 느끼려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된다. 하루는 서당 원장님과 동석을 하게됐다. 한문에 고수인데다 한시 몇 수 정도는 가볍게 부를 정도로 정감이 가는 분이었다.

술은 잘 마시지 못하는 것 같은데 분위기 잡는데는 그만 이었다. 경기민요에서 사자성어에 얽힌 이야기까지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한자리 할 분이었다.

역시 남자는 술을 잘 마시나, 덜 마시나, 안 마시나 그저 술자리에 암내만 풍기면 잡기가 튀어나온다.

뭐 동물적 감각이랄까. 주모가 대화 도중 끼어 들어 한 수를 거드니 그는 신명이 났다. 장고를 두들겨 가면서 창 한 곡을 땡기는데 인간문화재 급은 안되지만 그나마 명창이었다. 경기민요 한 곡에 주모가 뿅 갔는지 안주 한 접시가 서비스로 날라져 오니 이 또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던가.

그는 노래 몇 곡을 연달아 부르더니 술자리를 의식해서인지 이백의 월하독작을 내뱉는데, 삼배통대도(三盃通大道)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단득주중취(但得酒中趣) 물위성자전(勿爲醒者傳)이라 하지 않는가.

이는 "석잔 술을 마시면 노장의 이른바 무위자연의 대도를 깨우칠 수 있고, 한 말 술을 마시면 자연의 섭리 그 핵심과 합치가 된다. 다만 나는 취중의 그 흥취를 즐길 뿐 술 못 마시는 속물들을 위해 아예 그 참 맛을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뜻 이렸다.

뒤이어 또 한 수를 날리니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장면이 아니던가.

금준미주는 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이요, 옥반가효 만성고(玉盤嘉肴萬姓膏)라. 촉누락시 민누락(燭淚落時民淚落)이면,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라 하지 않는가.

"금 잔의 아름다운 술은 천인의 피요, 옥 쟁반 위에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원망소리라, 촛불 눈물 떨어질 적에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다"

좋은 말이다.

막걸리 세 동을 비우고 들어보니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이백처럼 술을 모르는 자에게 그 참 맛을 알려 줄 일도 없고,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굵직굵직한 정계 인물들이 쇠고랑을 차고 감방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보면 이몽룡 선생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무엇이 그리도 욕심이 많은지, 욕심이 과하면 화를 자초하게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언제나 우리나라 정치에 안착이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걱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잖는가. 그저 막걸리 한 순배에 세월을 실어 보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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