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청이 9일 한미약품이 신청한 비만치료 개량신약 "슬리머"에 대해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독성시험 자료 미비를 이유로 허가 반려 처분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슬리머가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발암 안전성이 높거나 최소한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개량신약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약품측은 “의약품 당국이 국제법을 과대 해석해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며 식약청을 비난하고 있다.

즉 에보트의 리덕틸 주성분이 "염산 시부트라민"인 데 반해 한미약품의 슬리머 주성분은 "메실산 시부트라민"으로 별개의 품목”이라는 것이다.

물론 식약청이 개량신약으로의 가치를 이유로 반려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미약품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는 그것이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식약청이 지난해 4월 슬리머가 애보트사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가, 이번에는 독성시험 자료 미비를 이유로 허가 반려 처분한 것이 잘 입증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반려를 놓고 "형평성에 어긋난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식약청이 무릎꿇었다" "괘심죄다"는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은 지난 2003년 4월 15일 한국노바티스가 한국로슈의 오리지널약물인 "셀셉트캡슐"의 염을 변경(소디움 모페틸)해 개발한 개량신약 "마이폴틱 장용정 360mg"은 승인 해준 반면, "리덕틸"의 염을 변경한 "슬리머"는 승인되지 않은 것 때문이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식약청이 무릎꿇었다" 는 것은 주한유럽위원회 대표부 도리안 F. 프린스 대사가 2005년 3월 슬리머 허가 반대서한을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 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에 보낸 것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미FTA가 진행중인 가운데 미국측이 지속적으로 약가 재평가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등 외적인 압박도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다.

"괘심죄"는 한미약품측이 식약청 처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한데 따른 것이다.

어떤 문제가 됐건 식약청은 규정적용의 논란에서는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식약청이 지난 2003년 4월 14일 염변경 개량신약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개정한 안유심사규정에서 개량신약의 경우 임상시험성적자료로 독성자료와 약리작용자료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히 식약청은 이 규정을 적용해 마이폴틱은 단회투여 독성시험자료와 안전성 약리자료, 발암성자료를 제출하지 않고도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슬리머는 엄격한 신약규정을 적용해 허가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슬리머는 다국적 제약사인 애보트의 비만 치료제 "리덕틸"의 주성분은 그대로 두고 염성분만 바꾼 이른바 개량신약이다. 때문에 염이 다르더라도 체내에서 동일한 활성성분(Active moiety)으로 작용한다는 국내규정에 없는 개념을 도입해 슬리머를 허가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는 이번 식약청의 반려 조치가 미국측의 통상압력에 의한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아울러 한미약품 측은 물론 모든 제약업계가 이해 할 수 있도록 국제법을 과대해석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할 것을 촉구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글보벌 신약이 변변치 않은 제약산업 구조를 지니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의 근간을 떠 받치기 위해서는 개량신약의 개발도 필수적이다.

지금 우리는 한미FTA 이전 부터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공장 철수를 현실로 보고 있다. 한술 더 떠 2005년 EDI 원외처방 청구액 1,020억을 기록하며 처방약 1위 자리를 지킨 한국화이자의 고혈압치료제 "노바스크"의 국내생산이 전면 중단될 전망이다. 화이자의 이런 조치는 국내에서 생산되던 노바스크도 중국공장으로부터 수입될 것임을 직시하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공장 철수는 결국 의약품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국내 제약사의 다국적사 대리점화를 앞당기는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올 상반기 의약품 수입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 무역역조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완제의약품 수입증가율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가 올 1~6월 의약품 수출입 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완제의약품 수입증가율이 58.3%로 가장 두드러진 반면 수출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한미약품이 신청한 슬리머에 대한 승인 반려조치가 향후 국내 제약사의 개량신약 개발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됨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미약품은 국내제약 시장에서의 개량신약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데다 자체적으로 집계한 자료를 통해 개량신약으로 1,600 억원의 약제비를 절감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 볼 이유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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