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은 무미랑에 대해 관심이 대단했다.

“태자는 황제가 되고, 장손무기는 태위(太慰)를 삼고, 저수량은 하남군공(河南君公), 이적(李勣)은 개부의동삼사(開附儀同三司)에 봉하고, 문무백관을 한 계급씩 올려 주고, 태자비 왕 씨를 황후로 승격시켰지요. 그런데 왕 씨의 몸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해 후궁 유(劉)씨의 몸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충(忠)이라 짓고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었지요. 또한 후궁 중에 소양제(簫良娣)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얼굴이 잘 생기고 해서 귀여움을 받았지요. 그런데 그 몸에서 아들을 낳아 숙비(淑妃)로 승격하고 그 아들의 이름을 소절(素節)이라 지었는데 황후와 숙비간에 서로 이간질을 하여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들을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세.”

조영은 걸사비우와 야벌 그리고 당 나라 조정을 들락거리며 장사했다는 고인의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절로 들어간 무미랑은 어떻게 되었나?”

대조영은 궁금해서 견디지를 못했다.

“무미랑은 백마사(白馬寺)란 절로 들어갔지요. 머리를 깎고 비구니(比丘尼)가 됐습지요. 절에서는 태종 황제의 후궁이 들어와 중노릇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요. 궁중에서 호강하던 무미랑이 산중 절간 발에 홀로 누워 있으니 눈물이 안날 리가 있겠습니까. 한시도 태자를 못잊어 오늘이나 내일이나 태자의 소식이 올까 일일삼추(一日三秋)지루하게 보내는데 생각나는 것은 남자 생각 뿐이었지요.

백마사 절에는 풍소보(馮小寶)라는 중이 있었는데 그는 비록 중노릇을 하고 있기는 했어도 얼굴이 잘 생기고 사나이답게 생겼던 모양입니다. 무미랑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중에 풍소보의 방을 드나들며 정을 통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자기 방으로 건너오며 이러기를 삼 년의 세월이 흘러간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자가 백마사에 행차한다는 기별이 왔습지요. 무미랑은 몸단장을 곱게 하고 기다렸지요. 천자의 어가(御駕)가 당도하자 중들은 길 좌우에 서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는 그 가운데 무미랑도 끼어 있었던가봐요. 고종황제는 백마사 절문을 들어서자마자 무미랑을 보더니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답니다. 비록 머리를 깎고 있기는 했지만 복사꽃 같은 무미랑에 그만 넋을 잃고 만거죠. 삼존대불(三尊大佛) 앞에서 분향하고는 무미랑을 데리고 운방(雲房)으로 가서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미랑의 옷을 벗기고 한 번 사랑을 나눈 모양인데 여전히 고종의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버린 거지요.

고종은 머리가 길면 데리러 오겠다고 떠난 후에 며칠 간격으로 머리가 얼마나 길었는지 보고 오라며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무미랑은 고종을 보내놓고 풍소보를 못잊어 밤중에 찾아갔는데 풍소보가 태자와의 관계를 알고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느냐며 나무랐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색정을 쏟아 부었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되어 무미랑의 머리가 조금 자라자 고종은 무미랑을 데리고 온 후에는 비빈이나 후궁처소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고종은 평상시에 자신은 상좌(上坐)하고 무미랑은 하좌(下坐)케 하고 황후는 방좌(傍坐)케 했답니다. 며칠 전에는 고종이 무미랑과 황후와 함께 주란정(酒蘭停)을 갔었는데 운무중(雲霧中)에서 무리랑과 원앙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황후는 돌아 온 모양인데 어떻게 고종을 구워 삶았는지 하루아침에 소의(昭儀)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무미랑은 절에서 삼 년을 지내고 태종과 십 년을 넘게 살았다면 올해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더 아는 것이 없느냐?”
“예, 당 조정이 아주 심상치 않아서요. 지금 무미랑은 제 딸을 밀살하고 왕황후를 폐하여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당 나라에 여제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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