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더라도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부인마저 부추겼다. 부인은 밖으로 나가더니 엽차를 들고 들어와 다시 옆에 앉았다.

"신성 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나요?"
"스님도 같은 말을 하더군."

그 말 이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요. 연 장군께서 막리지에 올랐어야 합니다. 어린 조카가 무얼 할 줄 알겠어요."

부인 사미원도 남생이 막리지에 오른 것에 배가 아팠다.
"그런데 말이요. 여보, 신성 스님이 방법을 알려주는데 조카들이 어리니 내가 올라야 한다면서 묘한 말을 남기고 가질 않겠소. 조카끼리 싸움을 붙이라는 말을..."

사미원은 그게 상책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사미원은 관노부의 부족 사엄 장군의 딸로 태어나 얼굴이 예쁘고 총기가 있어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데 연정토가 연개소문의 심부름으로 갔다가 강제로 뺏다시피 해서 결혼했다. 처음에는 장인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아들 하나를 낳고부터 사위로 인정을 했다.

"영감, 이렇게 하면 어때요. 큰조카를 지방 순시를 보내놓고 작은 조카들과 싸움을 붙이면 영감은 그냥 막리지 자리를 뺏게 되잖아요."

부인의 말에 연정토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형이 모반했다고 씌어 나이 어린 조카를 막리지로 앉히고 영감은 태대대로가 되시면 되지요."

연정토의 입가에 미소가 흘러 나왔다.
남생은 스물 네 살에 막리지에 임명되어 삼대군 장군까지 겸했다. 남생이 막리지에 오른 후로는 보름이나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당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남생이 먼저 와서 말했다.

"편찮으시만 말을 들었습니다.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남생은 삼촌이 아프다는 말은 듣기는 했으나 아무리 아파도 축하파티에 오지 않은 것을 못내 섭섭하게 생각했다. 조당에서 중신들이 남생에게 굽실거리는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연정토는 말했다.

"소장, 막리지 대감께 올립니다."
모든 신하들은 연정토에게 눈이 쏠렸다.

"숙부님, 어서 말해 보시오."

남생은 막리지에 오른 후 더욱 의젓해 보였다.
"소문에는 압수 이북의 성은 오랜 당 나라의 침공으로 생활이 몹시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 동안 태대대로님께서 병환에 오래 계시옵고 힘이 거기까지 미치치 못해 굶주리는 백성이 많아 원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막리지 대감께서 취임하셨으니 성을 두루 살피시고 당 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점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연정토의 말에 대신들은 저마다 연장군의 말이 옳다고 거들었다. 보장왕도 연정토의 말이 옳다며 다녀오게 했다. 압수 이북의 32개 성은 평양성과 너무 거리가 떨어져 있어 성을 한 바퀴 돌려면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어렵더라도 백성들을 돌아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보장왕이 연정토의 말에 동참을 했다. 남생으로서는 강제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건에게 병권을 위임하고 흑벌무와 선도해를 찾아가 지방 순시를 떠나니 가정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맨 마지막으로 연정토의 집을 찾아갔다.

"숙부님, 두 아우에게 부탁은 했으나 삼촌께서 많이 보살펴 주십시오."
"걱정 말게. 이 숙부가 있지 않은가. 형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신라까지 들어간 모양이야."
"그걸 어떻게?"

"글쎄 말이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지만, 신라가 알고 있다면 당 나라도 알고 있을 지도 모르네. 이번 순시에 당 나라의 침공을 대비해서 군사들의 점검이 무엇보다 중요하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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