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궁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신성은 그만 어깨가 축 늘어졌다. 보장왕에게 인사를 하고 옆을 보니 남생이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생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번쩍이는 것 같았다. 차마 연정토를 막리지로 추대하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왕마마, 국가의 기둥인 막리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속히 새사람으로 나라의 기강을 세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소이다. 짐의 생각으로는 태대대로의 장남 남생 장군을 생각하고 있는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하오?"

신성은 남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생은 어서 대답을 하라는 듯 눈을 아래위로 감았다 떴다 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남생 장군께서는 태대대로님의 뜻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고맙소. 과인도 그런 점에서 스님과 같소이다."

신성은 궁궐에서 나오자 연정토의 집으로 달려갔다. 신성이 오기를 기다리던 연정토는 그 어느 때보다 얼굴에 화색이 듬뿍 담겨져 있었다.

"어떻게 되었소?"

"대왕마마께서는 연 장군님을 생각하고 계시는 듯한데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남생이 옆에서 협박하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손을 빨리 쓰셔야 할 것 같아요."

신성은 은근히 연정토를 부추겼다. 그의 마음에는 연정토가 정권을 잡아야 불교가 다시 살아 남을 것만 같았다. 연정토의 얼굴이 금새 벌겋게 달라지고 있었다.

"전혀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어떻게?"

연정토는 바짝 신성의 곁으로 다가 앉았다.
"만약 남생이 막리지에 오르게 되면 죽이고 정권을 잡으셔야지요."
"스님 그게 무슨 말이오?"

"알았소이다. 연장군은 막리지 자격이 없어요. 막리지 자리는 살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님을 잘 보셨지요. 왕을 죽이고 강제로 정권을 탈환한 게 아닙니다. 배짱도 있어야 하고요. 소승이 잘못 보았소이다."

"그래도 어찌 조카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는단 말이오?"

연정토는 고개를 내저었다. 할아버지 연자유, 아버지 연태조 모두가 막리지였고 형 또한 태대대로 응당리 내가 그 자리를 물러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가도 조카를 죽여가면서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대의 운은 두 번 다시 오지를 않소이다. 소승이 잘못보았는지 몰라도 장군은 막리지의 상이외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세상이 연 장군을 막리지에 오르게 할 것이니 두고 보시오. 그런데 방법은 그 길밖에는 없소이다."

신성은 연 장군에게 여운을 남겨 두고 있어났다.
그 이튿날 전격적으로 남생이 막리지에 추대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연정토는 남생의 축하연에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있는데 부인 사미원이 말을 걸었다.

"큰조카가 막리지 자리에 앉아 기쁘시지 않습니까. 가 보셔야죠?"

아내는 남편의 행동이 못마땅해 말했다.
"어린 게 무얼 할 줄 안다고 막리지에 추대하나?"

남편의 말에 사미원은 금방 그 뜻을 알아맞혀 말했다.

"응당히 당신이 돼야지요. 대왕마마께서 막리지에 추대하더라도 삼촌이 계시는데 어찌 제가 할 수 있으냐고 해야 마땅하지 않겠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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