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0년 여름 5월 초하루.
연개소문의 옆구리에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안시성에서 당군이 쏜 화살 하나가 옆구리에 맞아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지만 복막염으로 번져 누운 지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 고구려 조정에서는 당 나라 태종의 생일을 맞아 진사할 예물을 결정하는데 금과 고구려의 미인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각 고을마다 방을 붙였다. "당 나라 황제에게 진상할 열 다섯 살 처녀로 용모가 아름답고 교양있는 여자로서 뽑힌 자에게는 금 100냥과 그 아비에게는 고을 현령을 시켜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방을 붙인 그 다음 날 국내성에서는 이상한 일이 생겼다. 흙으로 만든 동명성왕의 어머니상에서 피눈물이 사흘이나 흘러내렸다. 동명성왕의 어머니상이 피눈물을 흘린것은 나라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백성들은 큰 걱정을 했다. 동명성왕의 어머니상의 눈에서 눈물이 걷히자 성간이 아기를 낳았는데 몸은 하나요, 머리가 둘 달린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런가 하면 안시성에는 100년 묶은 여우가 나타나 밤새도록 울었고, 평양의 하천이 사흘이나 핏빛이었다.

연개소문의 눈에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옆에는 양만춘 안시성 성주와 흑벌무, 선도해 그리고 본처의 소생 남생, 첩의 아들 남건, 남산, 동생 연정토가 태대대로의 운명을 지켜보기 위해 몇 시간째 앉아 있었다.

정신을 회복한 연개소문은 양만춘의 손을 잡았다.
"자네는 내 아들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게야. 내가 영류왕을 죽이고 제일 먼저 달려가 자네에게 내 부하가 되어 달라고 사정했지. 참 지독한 자네였어. 자네는 나를 안시성에 들어 오지 못하게 막았지. 그때 참 흑벌무도 잘 알겠군, 성문을 부수고 들어오라고 해서 흑벌무가 부쉈지. 내 부하가 도와 달라고 했더니 "하늘에는 해가 두 개 없듯이 나라에도 임금이 둘이 있을 수 없다"며 불복하기에 내가 밧줄로 묶었지. 그 때 칼로 위협하면 자네가 살려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죽이라고 달려들지 않겠나. 정말 고구려의 장군이구나 하고 감탄을 했지. 죽일 수 있었는데도 아까워서 죽이지 못했는데 당 나라를 같이 쳐부수자고 했더니 그때야 "형님"이 라고 부르며 나를 도와 주었지. 정말 고마웠네."

연개소문은 다음에 흑벌무의 손을 잡았다.
"자네는 내가 저승에 갈 때 꼭 데리고 가려고 했네만 내가 먼저 가게 되어 미안하네, 아우야, 자네의 빚을 너무 많이 짊어졌다. 자네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산을 내려오다가 어느 주막집을 가게 되었는데 말갈 여자를 데리고 강제로 욕을 보이려 하기에 내기를 걸었지. 밧줄을 주고 너는 방에서 당기고 나는 마당에서 당길 테니 네가 끌려 나오면 여자를 나에게 주고 내가 끌려가면 가지고 있는 곰을 주겠다고 했더니 곰이 탐났던 모양이야. 당장 하자며 밧줄을 당기는데 벽이 무너지며 마당으로 끌려 나왔지. 마당으로 끌려나와서는 내 아우가 되겠가고 약속을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 동생 정토가 있지만 더 잘해 주려 했는데.... 그래도 자네 아들 흑선우는 자네보다 더 유명한 장군이 될 걸세."

연개소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선도해의 손을 잡았다.

"도해야. 자네에게 정말 미안하다. 고구려를 얻은 것도 모두 자네 공이 컸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으면서 끝까지 도와준 그 은혜를 못갚네 그려"

연개소문의 혀가 자꾸 굳어지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뒤로 물러나고 아들 셋과 동생이 연개소문의 곁으로 다가 앉았다. 연개소문은 아들들의 손을 포개 잡고 말했다.

"너희 삼 형제는 우의가 있어야 한다. 서로 미워하지 말고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 남생은 큰형이니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아비 노릇을 해야 할 것 이야. 내가 죽었다고 곡을 하고 소문이 나게 되면 당 나라가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야. 내가 죽었다고 3년은 발설하지 말라. 그때까지는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야. 내가 죽으면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합천강가에 가매장했다가 대륙정벌이 성공한 다음에 장례 지내도록 하라."

연개소문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구려의 운명과 대룩 진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날 밤 연개소문의 시신은 그의 유언대로 합천강가에 묻었다.

연정토가 집에 도착하니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신성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성 스님은 연정토와는 형제지간처럼 친했다.

"장군께선 왜 이렇게 늦으셨소."
"예, 그럴 일이 있었소이다. 오래 기다렸어요?"

신성은 연정토의 집에 온지 이틀이나 되었다. 당 나라에서 도교가 들어와 불교가 박해를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양성 내에 있었지만 도교의 붐에 밀려 묘향산까지 숨어 들어가 암자에서 수도하고 있었다.

"형님이 저녁에 돌아가셔셔....."
연정토가 너무나 쉽게 발설을 하고 말았다. 신성은 깜짝놀랐다.

"태대대로님께서요?"
"그래요. 절대 말을 하지 마세요. 절대 입밖으에 내서는 안됩니다."
연정토는 자신도 모르게 뱉어 낸 말이어서 담으려해도 어쩔 수 없어 다짐을 했다.

"아무렴요. 그럼 국상을 지내시겠군요."
"아니올시다. 아무도 알리지 말라해서....."

신성은 더 물었지만 연정토는 대답을 회피했다. 신성은 그 이튿날 암자로 돌아와 같이 지내는 혜량 스님에게 연개소문이 죽었다는 말을 했다. 혜량은 신라 사람으로 고구려의 정탐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신성이 묵고 있는 암자로 찾아왔다. 신성과는 행자 생활을 할 때 같이 해 왔었다. 혜량은 신성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위였다. 그래서 항상 신성을 동생처럼 사랑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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