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손에 끌려 집안으로 들어온 미옥은 깜짝 놀랐다. 훈이와 이청 도자기 전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산 꽃병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걸 어째" 미옥은 깨어진 도자기 조각을 주섬주섬 집어 들며 흐트러진 마음을 갈아 앉혔다. 어릴 때 어머니가 여자는 그릇이나 거울을 깨뜨리면 좋지 않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대 얻어맞는 편이 더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다.

미옥은 거실 한 구석이 웅크리고 앉아 깨어진 도자기를 들고 울고 있었다. 한펴니 되어줄 줄 알았던 딸마저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술 취한 남편과 싸움하기란 싫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는 그 생각밖에는 없었다. 미옥은 얼마간 호흡을 가다듬고 일어났다. 훈이와 부산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듯했다. 싸움 끝이라 하룻밤 지내고 돌아와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떠오르자 가방에 옷가지 몇 개를 집어넣고 딸 방으로 건너갔다.

“나 친구 집에 하룻밤 자고 올게. 냉장고에 반찬을 만들어 넣어 두었다.”
미옥이 밖으로 나오는데 딸이 계단까지 내려와 말했다.
“엄마, 조용히 생각해 봐, 마음을 갈아 앉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나는 엄마의 결정에 무조건 따를 거야.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니거든, 엄마가 원하는 장밋빛 인생을 집에 있으면서 가꿀래, 나가서 가꿀래.”

딸의 말이 귀 너머로 들렸다. 발걸음은 총총 훈이가 살고 있는 동네로 가고 있었다. 미옥은 핸드폰으로 훈이를 불러냈다.

“우리 멀리 여행 다녀와요. 지금 그리로 가고 있어요.”
누구보다 좋아하는 것은 훈이였다. 훈이는 벌써부터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은 사이어서 제주도로 가는 시간은 쉽게 바꿀 있었다. 비행기가 구름사이로 숨어들자 미옥은 훈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 여는 때보다 포근한 훈이의 가슴에 장미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랑해. 너무너무 행복해.”

미옥의 입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땅은 언제 팔려?”
“곧 팔릴 테지. 팔아 달라고 했으니까.”
“팔리면 내 딸과 같이 있게 해줘. 내 딸이라서 두둔하는 것은 아니고 참 착해. 책임져 줄 수 있지?”

미옥의 본심이었다. 아무리 훈이가 좋아도 딸을 아빠에게 주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훈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었다.
“우리 2억 가지고 1억 5천짜리 아파트 전세 얻고 5천 가지고 거실에 아름다운 곷도 심어놓고 그리고 나 피아노도 잘 친다. 내가 피아노 치면 당신은 노래를 부르고. 생각만 해도 말년에 장밋빛 인생 같아.”

미옥이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고 있어서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국산 피아노일망정 가지고 있는 학생은 반에서 미옥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예회 때는 피아노 독주도 했다. 친구들은 미옥이 나중에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옥의 꿈은 피아노 연주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방대학교 음악교수에게 레슨을 받으며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한 곡은 맨델스존의 소나타였는데 첫코드가 계명으로 왼손에 "도 솔" 오른손에 "솔 도 미l"로 되어 있어 양 엄지손가락에 화성법이 가장 적은 비중이 오는 "솔"이 중복되고 비중이 큰 아래 근음 "도"와 멜로디에 해당하는 윗음 "미"는 힘이 없는 새끼손가락에 배열되어 있었다. 미옥은 첫 코드를 치자마자 교수는 소리를 질렀다.

“화성법을 배웠을 텐데 이게 뭐야. "솔"은 화성법에서 생략해도 좋을 정도로 비중이 적은 음인데 그 음을 이렇게 크게 들리게 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몹시 꾸중을 들었다. 처음으로 각 음의 화성적인 기능에 눈이 떠진 미옥은 그 날부터 각 화성의 기능에 따라 손가락마다 다른 비중의 힘을 배열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한 새로운 연습 때문에 미옥의 손은 뒤틀리고 스케일에서는 새로운 운동량의 분배에 의해 실수가 연발하였다. 좋아지기는커녕 악화 일로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점점 구렁텅이에 빠지는 자신의 연주를 보며 울었다. 교수는 탄식 섞인 한숨과 미옥의 눈물로 가득 메워져서 피아노 연주를 그만 두게 되었다. 시집 올적에 피아노를 가지고 오려고 했지만 집이 좁아 가지고 오지 못했다. 멈추었던 피아노도 다시 치고 싶었다.

비행기는 어느덧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훈이는 렌트카를 불러 아주 최신형 에쿠스 벤츠를 불렀다. 미옥은 준비한 머플러를 목에 감고 차문을 활짝 열어 재치고 5. 16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보, 우리 차도 사자. 빨간 색이 어때?”
“그래. 아주 예쁜 것으로 ..............”
“우리는 행복할거야. 그리고 나 고전무용도 배울 거야. 당신 앞에서 멋지게 춤도 추고 싶어.”
“욕심도 많군.“
“나 욕심 많아.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 모두 하고 싶어. 해 줄 수 있지?”
“응, 당신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
“그렇지만 ...........”
미옥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왜 그래. 당신.“
“너무 제가 짐이 되는 것같아요”
“아니야. 짐은 무슨 짐. 우리 남은 인생 멋지게 살아보자고. 자 내려”
훈이는 미옥의 손을 잡고 한라산을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데는 너무나 힘들었다. 마치 훈이와 7년이란 사랑을 나누는 그런 세월만큼이나,
미옥의 셔츠가 땀이 흠뻑 젖었다. 정상에 오를 즈음은 파죽이 되어 쓰러졌다. 한동안 미옥은 하늘에 흘러 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참 힘들었지요?”
훈이는 미옥의 옆에 누워 말했다.
“그럼요. 이제부터 저는 산을 오른 만치 힘들어야 해요. 아주 힘든 산이.”
“그래. 인생은 산과 같아. 오르면 또 내려가야 하고 또 올라야 하잖아.”
“우리가 같이 살아도 또 산이 있을까요? 들판만 있었으면 좋겠다.”
미옥은 훈이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미옥은 훈이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훈이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너무 좋아서 꽉 깨물었지.”

미옥은 웃으며 말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미옥은 집이 도살장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언제 데려가겠느냐고 다그쳤다. 온통 정신이 훈이에게 쏟아져서 혼나간 여자 같았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다는 것이 소금을 넣어 먹지를 못했고, 간장을 붓는다는 것이 참기름을 들어부어 음식을 버리기 일쑤였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다가 훈이 생각에 앞가슴 부위를 태워 먹기도 했다. 더 이상 자리에 앉지를 못해 안절부절했다. 미옥은 입은 채로 올림픽교로 걷고 있었다.
“나야. 땅은 안 팔려?”
미옥은 울상이었다.
“매매가 안 되잖아 워낙 불경기라서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나도 미치겠어.”
“싸게라도 팔면 안돼?”
“사는 사람이 없다니까.”
훈이의 목소리도 울상이었다.
“나 어떻게 해. 나 몰라.”

미옥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미옥은 한강에 떠다니는 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끝-

지금까지 "문밖의 여자"를 많이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속 연재 "발해 대통령"도 많이 사랑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박정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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