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를 만나는 날에는 그 어느 날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새벽에 목욕탕을 다녀와야 했고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반찬도 만들어야 했다. 몸은 부산히 바빴다.

그러나 훈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전화 벨소리에 그녀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부천에 살고 있는 수미였다.

처음 시집와서 부천에 둥지를 틀었을 때 앞뒤 집에서 살았다. 그 집은 첫 딸을 낳았고 미옥은 아들을 낳았다. 두 번째는 반대로 수미는 아들을 낳았고 미옥은 딸을 낳아 서로 자매를 두고 있었다.

수미의 남편은 전자부품가게를 하고 있는데 장사가 잘 안되어 막벌이로 나갔다. 나이가 마흔이 훨씬 넘어 취직할 데가 없어 미옥의 직장과 같은 텔레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미옥은 호텔마케팅을 하고 있었고 수미는 부동산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하루 종일 전화를 하다보면 목이 부러지는 듯 아팠다. 그래서 토요일은 직장을 나가지 않는다. 수미의 키는 별로 크지않지만 작달막한 키에 얼굴은 동글동글하여 걸어갈 때면 굴러가는 듯했다.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아 제대로 옷 한 벌이 없어 언니 것을 얻어 입곤 했지만 돈 많은 애인을 얻고부터는 사람이 달라졌다. 빨간 투피스에 다이아반지, 목걸이, 팔찌까지 하고 다니며 한층 뽐을 냈다. 그래서 미옥이도 훈이를 졸라 목걸이와 반지를 얻어 입기는 했으나 수미와는 쨈도 안되었다.

“얘, 나 차 샀다. 좋은 차는 아니지만....."

수미는 신이 나 있었다. 분명히 애인이 사 준 게 틀림없었다.

“잘 됐다. 나는 주차장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다."

미옥은 이렇게 둘러댔지만 수미가 한없이 부러웠다. 수미의 수단은 보통이 넘었다. 미옥이가 알기로는 애인이 다섯은 바뀌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첫 애인은 공무원이었는데 너무 꽁생원이라며 한 달도 못가서 갈아치웠고, 둘째는 중소기업을 하는 사장이었는데 사귄지 보름도 못되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감옥으로 가 버렸고, 셋째와 넷째는 몇 번 모텔을 갔었는데 너무 변태성이라서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범털을 만난 모양이었다. 말만하면 척척 사준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얘, 미옥아. 우리 뒷집에 살던 형숙이 있지?”

“응 그래, 요즘 뭐 한다니?”

“폐업중이래?”

“걔가 장사했니?”

“그럼, 구멍가게 했잖아. 남자가 요즘 오질 않아 구멍가게가 폐업중이래. 나보고 애인 하나 구해달라고 목을 매더라.”

“이혼했니?”

“그럼, 벌써 가게 문 닫은 지 삼년이나 됐대.”

“그랬구나. 너는 참 좋겠다. 구멍가게가 성업 중이어서.”

"너도 훈이씨와 자주 만나니?”

“가끔 전화만”

미옥은 애써 감추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화장도 해야 하고 훈이가 지금쯤 차를 몰고 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우리 내일 통화하자. 즐거운 토요일이 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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