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의 맏형, 한의계의 큰별, 인심유술의 평생 실천자로 한의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던 제광(際光) 배원식 옹(한의협 명예회장)이 12일 새벽 2시 92세의 일기로 자택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1938년 한의학에 첫 입문했으며, 해방 후 교육사업, 부산피난 시절 서울한의과대학 설립, 한의사제도 제정, ICOM 창립에 이르기까지 남긴 발자취는 살아있는 한의학의 역사이자 황무지였던 한의학을 옥토로 바꾼 개척자로 평가되고 있다.

평생 한의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고인은 54년 처음으로 월간지 "의림"을 창간하고, 55년에는 한의계 처음으로 대구에서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해 학문적 토대 마련에도 남다른 정열을 보였었다.

특히 56년 동방의학회를 창설해 임상학술강연회를 개최하고, 70년 5월에는 한국동양의학회를 정식 창설해 매월 임상학술집담회를 열어 후학들에게 학문을 길을 인도하는데도 심혈을 쏟아왔다. 현재 집담회 329회란 경이로운 기록이 고인의 발자취를 그대로 입증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고인은 한. 중. 일을 비롯한 유럽, 미국 등 국제사회에 한국한의학을 알리는 첨병이자 한의학의 세계화 기초를 놓은 개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인은 61년 4월 제12회 일본동양의학회 동경대회에 초청을 받아 처음 외국과의 학술적 교류 물꼬를 턴 이후 1982년 중화민국 중의사공회와 자매결연을 맺은데 이어 1992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중의약학회와 한국한의사협회간의 자매결연의 산파역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같은 국제적 노력과 경험들은 한국한의사협회 주도로 국제동양의학회 창설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76년 서울에서 제1차 학술대회를 열어 한국한의학의 존재를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때 만들어진 국제동양의학회는 동경, 대만, 스위스, 라스베가스 등을 순회하며 개최하게 되고, 지난해에는 전세계 43개국 8천명이 참가하는 명실공히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인은 부고도 화환도 마다하고 연고도 없는 천안에 빈소를 마련해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장례를 치러달라면서 “죽어서나마 세계 만방을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주검 이틀 후 깨끗하게 화장해 동해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깨끗하게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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