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분열과 증식을 거듭하는 암세포는 주변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다. 림프관을 통해 가까운 주변 림프절로, 혈관을 통해 간이나 폐 같은 멀리 떨어진 장기로 서식지를 옮긴다. 암세포의 전이는 암 입장에선 생존전략이나 다름없다. 특히 림프절로의 암 전이 여부는 암 환자의 생존기간을 결정하는 예후인자이자 치료방향을 설정하는 필수지표와 같기에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림프절로의 전이 기전은 아직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각종 면역세포가 포진돼 있는 면역기관인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도달한 이후 미세환경에 적응해 살아남는 건지는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 연구진이 그 의문에 해답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하기 위해 지방산을 핵심 연료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해 향후 암 퇴치를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 암세포는 암이 처음 시작된 원발 종양(primary tumor)에서 혈관 또는 림프관을 통해 전이를 시작한다. 연구진은 담즙산이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 핵의 비타민D 수용체(VDR)의 활성화를 유도하며, 그 결과 전사인자 YAP이 활성화되어 지방산 산화를 증가시키고 림프절 전이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암세포는 암이 처음 시작된 원발 종양(primary tumor)에서 혈관 또는 림프관을 통해 전이를 시작한다. 연구진은 담즙산이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 핵의 비타민D 수용체(VDR)의 활성화를 유도하며, 그 결과 전사인자 YAP이 활성화돼 지방산 산화를 증가시키고 림프절 전이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암세포는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게 정설이었다. 연구진은 흑색종(피부암)과 유방암 모델 생쥐를 중심으로 종양이 최초로 시작되는 원발 종양(primary tumor)과 림프절 전이 종양을 단계별로 살펴보는 연구를 설계했다. 연구진은 림프절로 전이가 진행될수록 지방대사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활성화되고, 특히 지방산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지방산 산화 과정이 활발함을 발견했다. 즉,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되면서 에너지를 얻는 대사 방법을 지방산을 사용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연구진은 림프절이 다른 조직에 비해 지방산이 풍족한 환경이며, 암세포가 이를 활용해 물질대사를 변화시키는 생존전략을 사용함을 확인했다. 실험동물에 지방산 산화를 억제하는 약제(Etomoxir)를 주입하자 림프절로의 전이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암세포가 더 이상 연료를 태울 수 없어 전이가 억제된 셈이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전사인자인 YAP이 림프절에 전이된 종양에서 활성화되면서 지방산 산화를 유도한다는 것을 대사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연구진은 일반 림프절에서 흑색종 암세포가 전이되는 단계별 과정을 살펴본 결과, 지방산 대사 관련 유전자가 전이된 림프절에서 더욱 활성화돼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지방산 산화 억제제(Etomoxir)를 실험군에 투여하자 대조군에 비해 암세포의 림프절 전이가 획기적으로 감소함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림프절에 전이된 종양에는 담즙산이 축적돼 있음을 발견하고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담즙산이 암세포 핵 속 비타민 D 수용체를 통해 YAP 전사인자 신호를 유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지방의 소화와 관련 있다고 알려진 담즙산 성분들이 신호물질로 작용해 전사인자 YAP을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번 연구는 폐나 간 등 장기로의 전이에 집중하던 기존의 암 연구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림프절 전이 기전을 밝혔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면역기관인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가 미세환경에 적응해 자라나기까지의 생존전략을 제시해 향후 암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산 산화 또는 전사인자 YAP 발현을 억제하면 림프절 전이가 억제된다는 연구결과를 발전시키면 표적형 차세대 항암제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규영 단장과 이충근 박사(종양내과 전문의)는 "이번 연구는 암 전이의 첫 관문인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대사를 변화시켜 지방산을 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현상과 그 기전을 처음으로 밝혔다"면서 "림프절 전이는 암 환자의 예후에 매우 중요한 인자이나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이뤄져 치료 측면에서도 접근이 어려웠다. 이번 연구로 림프절 전이 자체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 개발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성과의 의미를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최고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 IF 41.058)에 최근호에 게재됐다.

 

저작권자 © 메디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