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정천기 교수, 서울의대 정우림 연구원.

뇌전증(간질) 치료를 위해 뇌 일부를 절제하더라도 뇌의 기억기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신경학적 기전이 밝혀졌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정천기 교수(서울의대 정우림 연구원) 연구팀은 뇌전증 치료를 위해 해마 일부분을 절제한 뒤에도 기억장애가 나타나지 않은 환자를 분석해 이같은 사실을 규명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뇌수술로 해마의 일부를 절제하더라도 남은 반대쪽 해마의 활성도가 기억기능 유지에 큰 역할을 하며, 절제 후 남은 해마의 뒷부분은 이와 큰 상관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성인 뇌전증에 다수를 차지하는 ‘측두엽뇌전증’은 해마부위의 경화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 측두엽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며, 수술 후 80%이상의 환자는 호전되거나 완치된다.

하지만 수술의 경우, 측두엽 안쪽에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돼 인지·학습기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수술여부와 그 범위를 선택하는데 있어 이를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팀은 뇌전증 치료를 위해 내측 측두엽 일부를 절제한 환자들을 모집했다. 이들은 수술 후 평균 6년 넘게 기억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대상자가 단어와 그림을 외우는 과제(단어와 그림 각 100개씩 30분간 암기 후, 총 150개<50개 추가> 중 해당 단어/그림 찾기)를 수행하는 동안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이들의 해마 활성화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수술로 절제한 부위의 반대쪽 해마 활성화 정도가 강할수록 수술 후 기억기능이 좋았으며, 이는 수술 전 보다 기억기능이 좋아진 대상자의 경우도 동일했다. 또한 왼쪽 뇌를 수술한 환자는 언어기억에서, 오른쪽의 경우에는 시각기억에서 이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건강한 사람과 비교한 결과에서는, 수술환자의 내측전전두엽과 수술한 반대쪽 해마부위의 연결성이 강할수록 기억기능이 좋아졌다. 건강한 사람의 뇌에는 이 같은 연결적 특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의대 정우림 연구원은 “해마의 일부분이 없더라도 뇌의 다른 부위가 이를 보완해 기존 역할을 수행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가 향후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기억장애 문제 해결에 있어서 실마리를 제공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정천기 교수는 “향후 뇌전증 치료에서 수술여부와 범위를 선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또한 기억장애를 최소화 하는 다른 뇌수술 치료법을 고안하는데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신경외과학(Journal of Neurosurgery)과 뇌영상 학술지 휴먼브레인매핑(Human Brain Mapping)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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