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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과 시도의사회는 원격진료와 주치의제로 변질될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를 백지화하고, 관련자 사퇴 및 대회원 사과 등의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권영팔 기자  |  ypkwo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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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0  13: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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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보건복지부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하 만관제 시범사업)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만관제 시범사업은 지역사회 일차의료시범사업과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사업으로, 500~800억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진행되는 만큼 의료계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시범사업은 원격진료 시행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고, 케어 코디네이터의 역할 자체가 무면허 의료행위의 소지가 있다. 그리고 만성질환관리 시스템이 지금대로 고착화 되어버리면 시스템에 적응을 마친 기존 의료기관들은 점점 더 유리해지는 반면 신규 개원의들의 시장 진입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므로, 이는 의료계 내부의 계층적 갈등 문제로 발전될 수도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이번 만관제 시범사업이 일차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일차의료를 붕괴시키고,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왜곡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차의료 붕괴 및 의료 시스템 왜곡의 심화는 결국 현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병원 의사들의 생존권에도 심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 등의 나라에서 시행되는 시스템들을 짜깁기한 수준밖에 안 되는 현재의 만관제는 기본적인 사업 구성과 사업 목표를 포함해서 철저히 처음부터 재검토 되어야 하고, 최근 지적되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사업 참여는 본 정책 시행의 명분만을 만들어주는 것이므로 절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의 의협 집행부와 상당수의 시도의사회 집행부는 이번 만관제 시범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시범사업 참여가 당장의 개원의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책이 몰고 올 역효과를 생각하면 지금의 시범사업 참여는 오히려 의사 회원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의협과 시도의사회가 당장의 정부가 던져주는 당근에 눈이 멀어 그 뒤에 숨겨진 채찍을 못 보고 있는 것이다. 개원의 뿐만 아니라 전체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표자들의 이러한 근시안적인 문제 접근 방식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에 본 회는 만관제 시범사업에 참여하려 하는 의협과 일부 시도의사회를 강력히 규탄하며,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시범 사업 참여 백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번 만관제 시범 사업 참여를 주도한 책임자의 사퇴 및 의협의 대회원 사과문 발표도 요구한다.

1. 만관제 시범사업에는 원격진료 시행을 위한 함정이 숨어있다.

지난 17일 대통령 주재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하였다. 그런데 이 경제정책방향에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를 도입하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일차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에 대한 맞춤형 케어플랜을 수립하고,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모니터링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를 위해 2019년도에 만성질환자에 대한 시범사업을 일차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말한 시범사업은 바로 이번에 시행 예정인 만관제 시범사업이다. 그런데 발표 내용에서도 드러났듯이 이 사업에는 원격진료의 핵심인 원격 모니터링과 환자에 대한 교육·상담 등의 의료행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결국 시범사업을 통해서 환자의 혈압이나 혈당 등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과 원격 상담이 정당한 의료행위로 인정받게 되는 명분을 쌓게 되는 것이다. 원격 모니터링과 원격 상담이 정당한 의료행위로 인정받게 되면 원격 처방이나 원격 자문을 통한 간접적 의료행위 까지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는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대면진료 원칙이 무너지게 되는 것으로, 결국 원격 모니터링 기계 오류로 인한 문제나 환자들이 의료 기관 방문을 점점 꺼리고 원격 상담에만 의존하게 되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시기를 놓치는 문제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

외국에서도 의료접근성이 매우 나쁘고, 한 의사나 의료기관이 커버해야 할 지역 범위가 매우 넓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원격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대부분 의사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같이 의료접근성이 매우 좋은 경우에는 대면진료를 보다 활성화 시키는 방향으로 일차의료 활성화가 진행되어야 국민 건강이나 의료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지금의 만관제 시범사업이 시행되어 원격진료 활성화로 확장되면 바로 옆에 의료기관을 놔두고 스마트폰으로 진료를 받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이는 심각한 의료 왜곡 현상으로 이어지고, 일차의료 붕괴로 이어질 것이기에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만관제 시범사업은 절대로 참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 만관제 시범사업의 핵심인 케어 코디네이터의 활성화는 무면허 의료행위의 소지가 있고, 정부의 의료비 절감의 목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번 만관제 시범사업의 핵심 중에 한 가지는 바로 케어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케어 코디네이터는 신규 환자의 경우 문진, 신체검사, 생활 습관 조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기존 환자의 경우 가정 혈압과 혈당의 기록을 확인하고, 약물 복용 순응도를 확인하며 케어플랜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케어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보면 실제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방문간호 서비스의 영역에서 의사의 역할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생각된다.

문진이나 환자의 병력을 조사하여 진료에 이용하는 것이나 혈압이나 혈당 등의 생체 정보를 진료에 이용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의료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케어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방문 간호서비스보다 확장 시키면 이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케어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지금의 방문간호 서비스 수준 이상이 아니라고 하면 굳이 케어 코디네이터라고 해서 새로 직함을 만들 필요도 없고, 이를 위한 수가를 신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케어 코디네이터를 만든 이유는 의사의 역할 일부를 맡길 생각을 했다는 것이고, 이는 엄밀히 말해서 의료인 면허체계가 흔들리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관제 시범사업의 케어 코디네이터 제도는 의료비가 비싼 외국에서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의사 대면 진료 보다는 간호 서비스를 활용하여 의료 이용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든 제도를 그대로 차용해 온 것이다. 결국 정부가 케어 코디네이터를 운용하려는 가장 큰 목적이 의료비 절감에 있는 것이다.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방문할 횟수를 케어 코디네이터를 통해서 줄여줌으로써 전체 의료비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말이 된다.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이런 시스템이 고착화되면 결국 일차의료 이용 자체가 줄어들고, 일차의료기관들의 경영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를 가지고 일차의료를 활성화 시키는 제도라고 말하는 것은 의사들을 기망하는 것일 뿐이다.

3. 지금의 만관제 시스템은 신규 개원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주치의제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수년 전부터 만관제 시행이 공론화 될 때마다 만관제 시행 반대의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기존의 개원의들에게는 유리한 반면 신규 개원 진입 장벽이 높아지게 되는 문제였다. 실제로 고혈압과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자들은 기존 의료기관에서 변경하는 경우가 많이 없고, 신환자의 경우도 새로 생긴 의료기관 보다는 기존에 그 지역에서 알려진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도 신규 개원의 장벽은 높다. 그런데 일차의료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만성질환 관리를 해서 환자 및 의료기관에 혜택을 주면, 이러한 시스템이 더욱 공고히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일차의료 활성화의 문제는 단순히 환자 혜택이나 의료기관 인센티브로는 해결할 수 없고,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된 상황에서 의료기관 환자 이용률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접근해야 한다.

또한 만관제의 시행은 만성질환자의 의료기관 등록을 유도하는 것으로 이는 주치의제 시행의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치의제는 신규 개원을 어렵게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득보다는 실이 많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지불제도 개편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만관제 시범사업은 조금만 디자인을 달리하면 주치의제 시범사업으로 변질될 수 있는 우려가 높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가 있음에도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향후 개원을 준비하는 의사들의 희망을 꺾는 행위이며, 이는 앞으로 의료계 내부적으로 세대 간 또는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이유 이외에도 만관제 시범사업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이런 많은 문제가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의협과 일부 시도의사회는 만관제 시범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도대체 의협과 시도의사회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집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던져주는 인센티브에만 목을 매달다가 의사로서의 전문성, 직업 안정성까지 다 빼앗기면서 지금의 상황까지 내몰린 것을 벌써 잊었다면 의사들의 대표들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관제 시행을 누구보다 반대했던 사람이 최대집 회장이었고, 지금의 의협집행부 상당수가 이전부터 만관제를 반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극렬히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입장을 바꾸어 찬성을 하면, 어느 회원이 의협 집행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의협과 시도의사회의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에 실망하고 있던 회원들은 19일 언론보도를 통해 의협 대변인이 만성질환관리 통합시범사업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 포상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배신감과 허탈감에 할 말을 잃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적극 협조한 공로로 주는 포상을 그 정책을 적극 반대해도 시원찮을 의협 집행부의 대변인이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현재 의사들이 처한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사건이다. 문재인 케어를 막을 유일한 후보라고 해서 회장으로 뽑았으나 누구보다 빨리 문재인 케어를 정착시키는데 공헌하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모든 협상에 임하면서도 회원들에게는 아무도 믿지 않을 파업 투쟁을 말하는 이런 황당한 의협 집행부를 견제할 세력조차 없는 지금의 의료계 현실은 민초 의사들에게 무한한 무력감과 패배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금이라도 의협과 시도의사회는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가 자신들의 판단 착오였음을 인정하고, 시범사업 참여를 백지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안의 문제점을 정확히 분석하고, 집행부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했어야 할 의협의 책임자는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할 것이며, 이 사안에 대해서 의협은 대회원 사과문을 발표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를 찬성한 일부 시도의사회장들은 더 이상 의협 집행부의 잘못된 결정에 반박도 하지 않는 거수기 노릇만 하지 말고, 진정 회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회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는 대표자로 거듭나 줄 것을 촉구한다. 본 회는 앞으로 의협 집행부와 시도의사회의 행보를 예의 주시할 것이고, 무력감과 패배감에 빠지기 보다는 많은 의사회원들과 함께 보다 나은 대안과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2018년 12월 20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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