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다사랑중앙병원)

주부 윤○○씨(52세)는 폐경과 함께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몸에 열이 나거나 춥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몸만큼이나 마음도 변덕스러웠다. 한겨울에도 몸의 열기를 못 이겨 창문을 열면 춥다고 성화인 가족들에게 서운했고, 밤새 뒤척이는 자신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며 투덜대는 남편이 야속했다.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면 “남들 다 겪는 갱년기인데 왜 이렇게 유난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윤씨가 밤마다 술을 마시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맥주 한 캔만 마셔도 금세 잠들 수 있었다. 우울한 마음도 술을 마시면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량은 늘어만 갔고 술에 취해 울거나 하소연을 늘어놓는 일도 잦아졌다. 가족들이 이런 자신의 술 문제를 지적하면 벌컥 화를 내고 잔소리를 피해 술병을 숨겨놓고 마시기도 했다. 결국 윤씨는 만취해 자해소동을 일으킨 사건을 계기로 가족들 손에 이끌려 알코올 전문병원을 찾게 됐다.

여성에게 나타나는 폐경은 난소의 노화로 일어나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보통 폐경은 마지막 생리 후 무월경 상태가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 전후 기간을 갱년기라고 부른다.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9.7세다. 인구학적으로 볼 때 50세 이상의 폐경여성 인구는 22.3%를 차지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30년에는 이 비율이 43.2%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폐경 상태로 남은 인생을 보내는 셈이다. 그럼에도 갱년기를 단순히 참고 지나가야 할 시기로 여겨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알코올 문제를 갱년기 증상으로 간과해 방치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 내과 전용준 원장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내과 전용준 원장은 “갱년기에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감소로 인해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며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해 갱년기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골다공증,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각종 질환 발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원장은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켜 갱년기 여성의 75%가 겪는 대표적 증상인 안면홍조와 발한, 가슴 두근거림 등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또한 폐경 이후에는 골밀도가 감소해 경미한 충격에도 쉽게 골절이 일어나는 골다공증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고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술을 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갱년기 여성 중 65% 이상이 경험하는 우울증에 있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태 원장은 "여성은 남성보다 우울이나 불안, 불면 등 정서적인 문제로 술을 찾는 경향이 높다"면서 “갱년기에는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 ‘행복 호르몬’ 세라토닌의 수치가 감소해 감정기복을 느끼기 쉬운데, 이 때 기분을 달래기 위한 자가 처치로 술을 찾는 여성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 허성태 원장

술은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수치를 높여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러나 알코올 효과가 사라지면 다시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되고 또 다시 술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허 원장은 “실제로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한 여성 알코올중독 환자 중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여성은 알코올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 집에서 혼자 몰래 마시는 경향이 높은 만큼 주변의 관심과 적극적인 치료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갱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폐경 이후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며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음주 문제와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함께 치료해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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