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이 기준이 없고 치밀하지 못하면 나라가 온통 시끄러워진다. 한 나라의 지도자나 주무부처 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이번 의약품 재분류를 놓고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전,현직 복지부장관도 이런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놓고 수년간 “된다” “안된다”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더니 정작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몇 시간 만에 이 문제를 끝냈다.

지금까지는 안 된다던 문제를 이처럼 쉽게 끝내는 것을 보면서 정책입안자들 모두가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마치 지조가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과 여론에 휘둘려 갈피를 못 잡는 형상이다.

그것도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찜찜한 꼬리를 남겼으니 또 한 번 우리사회가 이 문제로 쓸데없는 소모전을 치룰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약사, 의사와 약사, 시민단체와 약사, 국회와 약사 곳곳에서 충돌이 일 조짐이다.

그 분수령은 21일 개최될 예정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의약품 재분류 논의다. 이미 대한약사회 김구 회장이 삭발 단식에 들어갔고 전국 16개 시도약사회장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강력한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을 선언했다.

여차하면 실력행사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원칙과 절차가 무시된 채 뭔가 쫓기듯 시작된 의약품 재분류는 계속해서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이미 발표된 44개 의약품 중에도 상당수 품목은 생산이 되지 않는 품목인데다, 정작 국민들이 원하는 품목은 충족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들이 야간에 급히 찾는 약이 박카스나, 드링크류가 아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참기 어려운 두통약, 소화제, 감기약, 파스나 상처치료제 등이 더 절실했다.

이 대통령과 복지부 장관은 모르겠지만 사실 드링크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슈퍼 등에서 몰래 몰래 팔아왔다. 국민들이 이런 드링크류를 밤에 사지 못해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번과 같은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21일 개최될 예정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의약품 재분류 논의는 이런 기준에서 재검토 돼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산부인과의사회에서는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응급 피임약"이 우리나라 보건의료 실정에서는 전문의약품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약사회는 전문의약품인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성분:구연산실데나필)와 비만치료제 "제니칼"(성분명:오르리스타트)에 대해 의사처방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이유와 핑계는 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약국에서 팔건 슈퍼에서 팔건 약물 부작용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정확히 따진다면 복지부는 그동안 약국에서 팔아오던 드링크의 경우도 "1일 한 병" 등 복용량이 적혀 있다. 이런 복용 기준을 결정해 기록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드링크류를 슈퍼에서 판매한다면 "1일 한 병" 등의 복용기준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된다. 하루에 수십 병을 사먹어도 누구하나 알 수 없다.

과도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한 두병은 괜찮지만 과다 복용 시 부작용이 나타날 개연성이 있는 약품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약화사고나,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이번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의 진정성은 크게 훼손된다. 쉽게 생각하고 넘어 갈 일이 아니다. 한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지만 부작용 사례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어떤 이유가 됐건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법으로 정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정도를 지키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반대로 유추해 이들 의약품들이 왜 지금까지 약국외 판매를 못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한다. 혹시라도 선거를 의식해 이번 문제를 끝내려 한다면 큰 화를 자초하는 것임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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