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의 한 병원이 경영악화와 재정적자를 이유로 이달 31로 폐원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이 병원의 폐원결정에 대구시민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랑과 봉사의 적십자 의도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적십자병원" 이기 때문이다.

적십자 병원의 설립취지는 지역거점공공병원으로서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 등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에 대하여 공공의료를 시행하며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무료진료 및 검진, 가정간호 및 재가 환자 관리, 만성질환 관리, 독거노인에 대한 인공관절치환술 등 다양한 공공의료서비스 제공이다.

그만큼 대구에 있는 의료 취약계층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공공의료기관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병원이었다.

실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은 의료수가에 있어 차이가 난다. 같은 진료와 검사를 해도 민간의료기관보다 더 저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공공의료기관에 있어서 재정적자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이 사랑과 봉사를 위해 조금씩 내는 회비를 가지고 적십자 병원이 흑자경영을 하는 것은 누구도 바라진 않을 것이다. 지난 해 9월 경상대 예방의학과 교수진이 발표한 "적십자 병원 발전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구적십자병원이 350병상 이하 종합병원과 동일한 환자 본인 부담금을 매길 경우 연간 3억 4천만 원 정도의 경영 흑자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충분히 흑자 경영을 할 수 있겠지만 공공의료기관이기에 적자는 그만큼 당연한 것이고 이러한 건전한 적자에 대해 국가와 적십자회는 애초에 예상된 대구적십자병원의 누적적자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병원의 폐원을 막았어야 했다.

국민을 위한 적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민주당 등 야5당은 정책연합위원회를 열고 "정책연합 1차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 내용은 “국가공공의료를 강화하며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유아에서 노인까지 질병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였다. 이는 이명박 정권의 의료 정책이 건강보험제도의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결국 전체 국민의 건강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의제였다.

의료서비스 민영화, 해외환자 유치, 보건산업 육성 등으로 보건의료 현장은 지금 산업화 바람이 불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제시하는 의료선진화 정책은 곧 의료산업의 개방으로 일자리 창출과 의료서비스 수출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공급체계는 민간의료기관 90%에 비해 공공의료기관의 수는 10%에 불가할 정도로 저조하다.

지난 해 신종플루 대란(大亂)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칙을 갖고 위기에 대처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예방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의 한 발 늦은 공급계획수립, 국공립병원인 서울대병원의 거점병원지정 거부, 미봉책 위주의 정책들로 국민에게 더욱 혼란을 주었다.

국가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은 바로 수익사업 위주의 경영이 아니라 현재 발생하고 있는, 또한 앞으로 일어날 여러 질병 위기상황에 대처하여 체계적으로 국가를 통제하는 것, 그리고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새터민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 등 낮은 곳까지 보듬어 주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줄어 2003년 3,551개소에서 2008년 3,614개소로 63개소 밖에 증가하지 않았으며, 병상 수 또한 4만 8,183병상에서 5만 3,122병상으로 4,939병상만 증가한 데 그쳤다. 이는 2003년 7.2%(기관 수), 14.0%(병상 수)에서 2008년엔 각각 6.3%, 11.1%로 민간의료기관 증가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또한 전현희(민주당)의원의 지난 해 국감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인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과 국립암센터의 경우 다른 국·공립병원의 의료급여환자 비율에 비해 크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국·공립병원의 평균 의료급여 환자 진료비율인 18.37%(2008년 청구건수 기준)의 1/3 수준인 6%에 불과해 4년 동안 꾸준히 하위 9,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저조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체계로 신종플루 대란 시 국가 전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 한 것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현재 제대로 운영되어야 할 공공의료기관들이 수익사업 위주의 경영으로 사회의 낮은 곳을 보듬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저버림으로써 찾아오는 의료취약자들마저 내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에서조차 시장의 관점으로 의료현장을 바라본다면 시장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의료기관은 높은 문턱으로 변해 이들을 오히려 더욱 의료사각지대로 내몰게 될 것이다.

의료는 산업이기 이전에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기본권이다. 기본에 충실한 다음 이후를 모색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 모두 수익성을 목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서로 간의 역할분배를 통해 의료사각의 틈을 메우는 그런 기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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