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의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에 한의학의 용어 및 시술방법이 정식 채택됐다며 출판기념회까지 열었던 대한한의사협회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더욱이 이 문제의 진위가 가려지면 그동안 6억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해 한의학의 국제 표준화 채택에 노력했던 복지부도 거액을 대고 빰맞는 꼴이 될 처지에 직면해 있다.

물론 중국측의 아집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각국 전통의학 전문가들 사이에 합의된 원칙과 방법에 근거 3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침구경혈부위의 역사적인 통일을 이루는 성과를 거둔 것이 한의학의 근거가 아니라는 주장에서 볼 때는 한의협이나 복지부 모두 신중했어야 했다.

우리는 WHO가 지난 2003년 통일된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의 제정을 위한 작업에 착수, 총 11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WHO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을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인체의 361개 혈위 가운데 자주 이용하는 합곡, 족삼리 등 92개 혈위가 각국간에 상이해 이를 통일 시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의협은 이번 표준 채택은 그동안 중의학 중심이었던 세계 전통의학 분야에서 한의학의 용어 및 기준이 채택됨으로써 침술 분야에서 학술적 우위를 점한 것은 물론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런 주장에서만 본다면 박수를 받아 마땅할 일이고, 향후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더 많은 투자가 뒤따라야할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이 한국의 침구 경혈이 국제표준으로 인정됐다는 한의협의 주장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으니 이 문제가 더 확산되면 국제적 망신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 중의과학원 침구연구소 황룽샹(黃龍祥) 부소장은 “361개의 표준 혈자리는 거의 100%가 중국 표준에 따른 것”이라며 “359개가 현행 중국 표준 혈자리와 똑같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WHO가 한국을 견책했으며, 사적인 채널을 통해 중국측에 유감의 뜻을 표시해 왔다"는 사실을 중국 관영신화통신(4일)이 보도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WHO까지 중국에서 침구경혈 국제표준 설명회를 갖고 실상을 밝힐 예정인데, 현재 한의협의 주장에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따라서 한의협이 이번 사태의 진위를 정확하게 가려 어떻게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에 한의학의 용어 및 시술방법이 정식 채택됐는지를 국민에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

지금 중국측은 “361개 혈자리 가운데 359개가 중국의 방안을 채용한 것”이라며 “한국이 근거없이 사실을 왜곡, 또 다른 문화침탈을 자행하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때문에 복지부가 그동안 6억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해 한의학의 국제 표준화 채택에 노력한 것이 우스운 꼴로 치부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한 해답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번 "WHO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의 제정을 위해 지난 5년간 최승훈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WPRO) 고문(경희대한의대 교수) 등 한의학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표준화 작업을 완성시킨 노력을 보상받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죽 쑤어서 개주는 꼴의 중국잔치를 열어주는 꼴이 되고 만다. 사실 침은 중국이 가장 전면에 내세우는 자존심이다. 미국 등에서 여전히 중의사가 아닌 침구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들의 자존심을 알 수 있다.

만약 중국측의 주장대로 361개 혈자리 가운데 359개가 중국의 방안을 채용한 것이라면 한의학은 달랑 2개의 방안이 책택된 것을 가지고 국제적 잔치를 한 것이나 다름 없다. 제발 한의협이 한의학 국제화 세계화를 위해 조급한 마음에 이번 문제를 침소봉대 한 것이 아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중국측의 콧대를 꺽어주기를 당부한다.

다국가가 참여하는 사업은 사소한 문제라도 항상 돌부리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침은 중국을 무시하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좀 더 신중한 생각으로 이번 문제를 홍보해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현재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수입쇠고기 문제를 한의협은 한번쯤 본보기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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