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은 자기 말만 뱉어놓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은 모두 잠갔다. 가스 밸브로부터 방마다 문을 잠그고 총총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야. 어딨어?”

“응, 가고 있어.”

훈이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는 집에서 백여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행여나 남의 눈에 띌까봐 이렇게 멀리 잡아 두었다. 미옥은 습관적으로 뒤를 몇 번씩이나 돌아보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듯 남편이 미행할 것만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훈이는 시동을 걸어둔 채 한길가에 버티고 있었다. 미옥이가 올라타기만 하면 언제나 떠날 수 있었다. 미옥이가 차문을 열고 훈의의 곁에 앉는 순간 약속이라도 했듯이 차는 워커힐 방향으로 내닫고 있었다.

“나 당신 무척 보고 싶었어. 일주일이 얼마나 긴지.”

미옥은 핸들을 잡은 훈이의 손등을 꼭 잡았다. 훈이의 대답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도.”

“당신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손에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어. 완전히 당신은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어. 당신은 마술사야.”

미옥의 말은 진심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멍하니 훈이를 생각했다. 부인과 이혼만 한다면 언제나 그의 품속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준비된 그녀의 마음은 이미 가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 우스운 얘기 하나 할까?”

미옥의 입에서는 구술 같은 목소리가 굴러 나왔다.

“내 친구 정희라고 있잖아. 그때 같이 노래방 갔던 친구. 걔가 얼마나 웃기는지. 어제 전화가 왔는데 내보고 구멍가게 잘 되느냐고 묻지 않겠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을 하는가 해서 구멍가게가 안 된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잘 안 된다고 하지 않겠어요.”

미옥은 한바탕 웃어 젖혔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자기는 요즘 가게로 남자들이 찾아오지 않아 휴업중이래. 웃기지 않어?”

“구멍가게? 아주 표현이 좋구먼. 당신은 구멍가게 성업이라고 하지 그랬어.”

“그걸 말이라고 해. 주말이면 많이 팔아주잖아.”

“나 말고도 당신 남편은 밤마다 구멍가게를 들락거리고.”

“근처만 와도 소름이 끼쳐.”

“그래도 한 이불 덮고 자잖아.”

“각자 이불 덮은 지는 당신을 알고부터야. 내가 지랄하면 부엌에 가서 자기도 하고.”

“그래도 미친 듯이 달려들면 어쩔 수 없잖아.”

“의무적이지 뭐. 3초도 걸리지 않아.”

분위기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미옥은 공연히 이런 말을 꺼내었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물은 건너갔다. 훈의의 표정이 굳어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남편 이야기는 꺼내지 말았으면 해. 진짜야. 한 달에 한번 정도인데 당신과 사랑을 나눌 때의 기쁨이란 없어. 믿어줘.”

미옥은 입을 굳게 닫아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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