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자격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과학기술의 산물인 의료기기의 사용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활용에 대한 중요한 법적근거가 마련됐다.

헌법재판소는 26일 2인의 한의사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사건번호 2012헌마551)에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한의사가 안압측정기 등 의료기기를 사용해 안질환 등을 진료한 행위에 대해 검사가 청구인들에게 한 기소유예처분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어 청구인들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은 구체적인 의료행위의 태양 및 목적, 그 행위의 학문적 기초가 되는 전문지식이 양·한방 중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지, 해당 의료행위에 관련된 규정, 그에 대한 한의사의 교육 및 숙련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비춰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의료공학의 발달로 종래 의사가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의료기기를 한방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한편 한방에서 활용되던 의료기법을 의사가 활용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되고 있고, 이러한 행위들이 의료법 제27조 제1항(본문 후단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이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간 갈등으로 비화돼 행정조치 요청이나 형사고발 등을 통해 다투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어 “의료법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제1조)으로 하고 있는바,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 후단의 해석 또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중점을 둬 해석돼야 할 것”이라며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고,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 후단의 위반행위는 결국 형사처벌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그 의미와 적용범위가 수범자인 의료인(이 사건 심판청구에서는 청구인들인 한의사)의 입장에서 명확해야 하고, 엄격히 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이 진료에 사용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는 측정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기기들로서 신체에 아무런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고, 측정결과를 한의사가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더구나 이들 기기 중 자동안굴절검사기는 의료인이 아닌 안경사도 사용할 수 있는 기기”라며, 이번 선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헌재는 우리의 전통의학서인 동의보감에서는 녹내장에 해당하는 질환을 녹풍(綠風), 백내장에 해당하는 질환을 원예(圓?)라고 하는 등 안구의 구조와 대표적 안질환에 대해 그 원인과 치료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이번 사건의 기기들의 사용은 종래 전해 내려오는 진단방법으로서 망진(望診, 자동시야측정장비,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문진(聞診, 청력측정기), 절진(切診, 자동안압측정장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한의과 대학의 교육과정에서 한방진단학, 한방외관과학 등의 강의와 실습을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한의학을 토대로 한 기본적인 안질환이나 귀질환에 대한 이 사건 기기들을 이용한 진료행위를 할 수 있는 기본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한의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침술이나 한약처방 등 한방의료행위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처럼 의료법은 한의사와 의사의 업무영역과 면허범위를 구별하는 이원적인 체계를 취하고 있지만, 이 사건 기기들을 이용한 검사는 자동화된 기기를 통한 안압, 굴절도, 시야, 수정체 혼탁, 청력 등에 관한 기초적인 결과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이들 기기들의 작동이나 결과 판독에 한의사의 진단능력을 넘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청구인들이 이 사건 기기들을 사용해 한 진료행위는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없음에도 피청구인은 법리를 오해해 청구인들의 이 사건 기기들을 이용한 진료행위가 의료법 제27조 제1항의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함으로써 청구인들의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리적인 판결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논란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매우 뜻깊은 결정”이라며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법리해석이 나온 만큼 현재 의료법 등 법조문에 미비돼 있는 관련조항의 즉각적인 제·개정과 행정적인 조치 등이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양의사단체 등의 직역 이기주의로 인해 이제 더 이상 한의사들이 진료에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이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대한한의사협회 2만 한의사들은 의료기기 활용을 통한 보다 양질의 한방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건강증진에 더욱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피청구인들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2012년 형제16206호로 청구인 하○○-2012년 형제18480호로 청구인 박△△)이 각각의 의료법위반 피의사건에 대해 의료법 제27조 제1항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나, 정상에 참작할 점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처분을 하자 각각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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